학창 시절,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부모님이 봉투를 들고 학교에 가던 장면을 기억하는 분 계실 겁니다. 저는 반대 편에서 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아버지가 제가 다니던 학교의 소사였거든요. 영화 <선생 김봉두>를 처음 봤을 때, 웃다가 갑자기 멈칫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촌지(寸志), 교실 안의 불편한 관행
촌지(寸志)란 원래 '작은 성의'를 뜻하는 한자어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단어는 교사에게 건네는 금품을 완곡하게 부르는 말로 굳어졌습니다. 영화 속 김봉두 선생은 이 촌지를 노골적으로 챙겼습니다. 봉투를 건네지 않은 학부모의 아이는 운동장 열 바퀴를 뛰고, 봉투를 쥐여 준 학부모의 아이는 당장 '조카'가 되는 식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촌지 문제는 옛날이야기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희 아버지가 학교 소사로 일하던 시절, 선생님이 봉투를 받는다는 사실은 아이들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누구는 칭찬받고 누구는 무시당하는 구분이 어디서 오는지, 초등학생도 본능적으로 알았거든요. 웃긴 건, 그걸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당연한 질서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교육부가 2000년대 초반 교원 촌지 수수 행위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선 것도 이 관행이 얼마나 뿌리 깊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실제로 교육부 교원 징계 통계를 보면 2000년대 초반 금품 수수 관련 징계 건수가 꾸준히 집계됐을 만큼, 영화 속 장면이 순전한 픽션이 아니었습니다. 김봉두의 캐릭터가 과장처럼 보이면서도 낯설지 않은 이유입니다.
강원도 분교(分校), 도망치듯 떠난 자리에서
분교(分校)란 본교에서 거리가 멀거나 학생 수가 적어 별도로 설치된 소규모 학교를 말합니다. 영화에서 김봉두가 발령받은 산내분교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전교생 다섯 명, 가게 하나 없는 마을, 담배 한 갑 사러 한 달에 한 번 읍내를 나가야 하는 곳. 봉두 입장에서는 유배지나 다름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이런 오지 환경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가 영화의 핵심입니다. 처음엔 자습을 시켜놓고 관사에서 빈둥거리던 봉두가, 아이들이 학교 끝난 뒤에도 자리를 지키고 기다린다는 걸 알게 되면서 조금씩 흔들립니다. 소석이가 집에서 밥을 못 먹는다는 걸 눈치채고, 급식을 핑계 삼아 동네 집밥을 얻어먹으려다가, 어느 순간 그게 진짜 급식이 되어 있는 장면은 코미디인데도 뭔가 뭉클합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농어촌 학생 수 감소로 분교 통폐합이 급격히 진행됐습니다. 교육부 농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 현황에 따르면 수백 개의 분교가 같은 이유로 문을 닫았습니다. 영화 속 산내분교처럼 "어차피 폐교될 학교"라는 말이 현실 어디선가 수없이 반복됐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아프게 느껴지는지도 모릅니다.
참교육(眞敎育), 봉두가 도달한 곳
참교육이란 지식 전달을 넘어 아이 한 명 한 명의 삶에 진심으로 개입하는 교육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성적표가 아니라 아이의 눈을 보는 교사가 실천하는 교육입니다. 봉두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명밖에 안 되는 학생 이름도 모르고, 서울 올라갈 날만 꼽으면서, 아이들 앞에서 연기 수업을 한 것도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 폐교를 앞당기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소석이의 편지를 읽으면서 봉두가 멈춥니다. "선생님이 새로 오셔서 너무 좋다. 그런데 며칠 안 돼서 살이 많이 빠지셨다. 아마도 우리 때문에 고민이 많으신 것 같다. 대신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겠다." 이 편지 한 장이 봉두의 사직서를 무너뜨립니다. 저도 이 장면에서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설득하는 방식이 어떤 논리나 감정 폭발이 아니라, 그냥 편지 한 장이라는 것이요.
봉두가 참교육에 도달하는 과정을 단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촌지로 학생을 차별하던 서울에서의 불량 교사 시절
- 강원도 분교 발령 후 대충 버티며 서울 복귀만 노리던 단계
- 아이들의 순수함에 조금씩 마음이 열리는 전환점
- 사직서를 쓰고 나서 아이들의 편지와 눈물에 다시 교단으로 돌아오는 결심
- 폐교식에서 "이 산내분교에서 보낸 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하는 마무리
이 다섯 단계가 억지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이 영화의 힘입니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이 교사의 영웅적 희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반면, 선생 김봉두는 끝까지 봉두를 위인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냥 조금 덜 나쁜 사람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오히려 더 진짜 같습니다.
소사(小使)의 아들이 선생 김봉두를 본 이유
소사(小使)란 학교나 관공서에서 청소, 관리 등 잡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직책이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학교마다 소사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제 아버지가 바로 그 소사였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복잡한 감정입니다. 아버지는 제게 가장 믿음직한 존재였지만, 학교에서는 숨기고 싶은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그 감정이 한꺼번에 터진 게 바로 그 여름날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수업 중에 창밖의 아버지를 가리키며 "저렇게 되고 싶으면 공부하지 마라"고 했을 때, 아이들이 킥킥거렸고 저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화끈거리는 얼굴로 몰래 창밖을 봤을 때,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리어카를 끌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 선생님이 촌지 문제로 시골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부끄러운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땀에 젖은 손으로 제 가방을 꼭 쥐여주며 "너는 꼭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던 아버지의 말이, 그 선생님의 어떤 수업보다 오래 남아 있습니다. 선생 김봉두에서 봉두의 아버지 역시 소사였다는 설정이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그 때문입니다. 봉두도 저도, 결국 소사의 아들이었으니까요.
인성교육진흥법(人性敎育振興法)이란 학생의 핵심 가치와 덕목을 함양하기 위해 2015년 제정된 법률입니다. 제도적 참교육을 의무화하려는 시도였지만, 법 이전에 봉두처럼 한 선생님이 한 아이의 눈을 제대로 보는 것이 먼저라는 걸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해줍니다.
선생 김봉두는 2003년 개봉 후 제40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시나리오상과 기획상을 수상했고, 지금 다시 봐도 전혀 낡지 않은 영화입니다. 억지 감동을 만들지 않는데도 눈물이 나오는 건, 우리 모두 어딘가에 봉두 같은 선생님을 만났거나, 소석이 같은 아이였던 기억이 있어서일 겁니다. 동심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 이 영화를 한 번쯤 꺼내 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자녀와 함께 보신다면,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참교육이 될 것입니다.
--- 참고: https://youtu.be/Rxzs4qHzASI?si=gugXYSqj-nQk39SD